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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 공부

여씨춘추

이번 글은 呂氏春秋 四曰誣徒편 해석입니다. 예과 생활 방학때 한문공부를 하면서 번역해 본 것입니다.

 

四曰誣徒

 

[今註]

本篇是說明敎學的方法,

본책은 교학의 방법을 설명한 것이다.

在於因人施敎, 並要求師徒同體

사람이 가르침을 베푸는 것에 있으니, 아울러 스승과 제자가 한몸이 되는 것을 요구한다.

尊師所以重道, 故爲師者亦要遵道崇禮以身作則, 取得弟子的尊敬

스승을 높이는 것이 도를 중히여기는 바인바, 고로 스승이 되어서 도를 따르고, 예를 숭상함으로써 몸소 행하면 제자의 존경을 얻는다.

因爲對上尊所得的反應是對下愛護

이로 인하여 윗사람을 대하여 존중하여 얻는바의 반응 이것이 아랫사람을 대하여 사랑하고 지킴이 된다.

對下一代的愛護, 自能將所知所能的盡量傳授

아랫사람을 대하는데 한가지로 사랑하고 지키고, 스스로 능히 장차 아는바 그리고 능한바의 양을 다하여 전하여 준다.

此乃人生樂事之一, 亦是人生的重責大任

이것은 곧 인생에서 즐겨 일할 한가지이다. 또 이것은 인생의 중책대임이다.

篇中列擧善敎不善敎的做法及其效果

책속에 열거한 잘가르침과 잘 못가르침의 만든법이 그 효과에 미친다.

爲師的能善敎, 則弟子能善學而有所成就

스승의 능히 잘가르침이 된즉, 제자도 능히 잘배워서 성취하는바가 있다.

爲師的不能善敎, 則弟子不能善學而無所成

스승이 되어서 능히 잘 가르치지 못한다면, 즉 제자도 능히 잘 배우지 못하여

성취하는 바가 없게 된다.

師之被尊, 爲其敎人以爲人之道,

스승이 존경을 받으면 그 남을 가르치는 것이 사람의 도가 되고,

기능지식향재기차.

기능과 지식은 오히려 그 다음에 있다.

所以欺騙學生的老師, 結果是自受其害

학생의 스승을 속이면 결과는 스스로 그 해를 받는다.

所以本篇有警世作用

본 책은 세상을 경계하여 경세하는 작용에 있는 바이다.

 

 

 達師之敎也, 使弟子安焉, 樂焉, 休焉, 游焉, 肅焉, 嚴焉

통달한 스승의 가르침은, 제자들로 하여금 편하게 하고, 즐겁게 하고,

아름답게 하고, 엄숙하게 하고 엄하게 한다.

此六者得於學, 則邪辟之道塞矣, 理義之術勝矣.

이 여섯가지가 배움에서 얻어지면 사악하고 편벽의 도가 막히고, 이와 뜻의 재주가 이긴다.

此六者不得於學, 則君不能令於臣, 父不能令於子

이 여섯가지를 학문에서 얻지 못하면, 군주는 능히 신하에게 명할 수 없고, 아비는 자식에게 능히 명할 수 없고,

師不能令於徒.

스승은 능히 제자들에게 명할수 없다.

人之情不能樂其所不安, 不能得於其所不樂.

사람의 정이란 불안한 바를 능히 즐기지 못하고, 그 즐겁지 않은 데에서 능히 얻지 못한다.

爲之而樂矣, 奚待賢者, 雖不肖者猶若勸之

그것을 하여도 그러나 즐거워 한다면 어찌 현자를 기다리겠는가. 비록 어리석은 자라도 오히려 이를 권한다,

爲之而苦矣, 奚待不肖者, 雖賢者猶不能久

이것을 행하나 괴롭다면 어찌 어리석은 자를 기다리는가. 비록 현자도 오히려 능히 오래 버틸 수 없다.

反諸人情, 則得所以勸學矣, 子華子曰.

이것을 사람의 인정에 돌이켜 보면, 즉 배움을 권하는 이유를 얻을 수 있다. 자화자가 말하길

王者樂其所以王, 亡者亦樂其所以亡.

왕이 된 자는 그 왕이 된 바를 즐기고, 망자는 역시 그 망한 바를 즐긴다.

故烹獸不足以盡獸, 嗜其脯則幾矣,

고로 짐승을 삶으면 다 먹기 부족하지만, 그 포를 즐기면 가능하다.

然則王者有嗜乎理義也, 亡者亦有嗜乎暴慢也

그러한 즉 왕은 이치와 의를 즐기는 것이 있고, 망자는 또 포악함과 게으름을 즐기는 것이 있다.

所嗜不同, 故其禍福亦不同

즐기는 바가 같지 않으니, 그러므로 그 화와 복은 또 같지 아니하다.

 

[今註]

此段是說明達師之敎, 達師是通達事理的老師

이 문단은 달사의 가르침을 설명한 것이다. 달사란 사리에 통달한 노사를 뜻한다.

安是安心求學, 樂是心情愉快

안이란 마음을 편히 하여 학문을 구함이요, 락이란 마음과 뜻을 유쾌하게 하는 것이다.

休是作息有時, 游是游於藝的優游自在,

휴라는 것은 때때로 휴식을 함이요, 유라는 것은 유어예자유자재히 편히 노닌다.’

이다.

肅是態度端莊, 嚴是作事認眞

숙은 태도가 단정하고 장엄함이고, 엄은 일을 함에 참을 아는 것이다.

這六項是訓練弟子爲學做人的方法,

이 육항은 제자를 훈련하여 인간을 만드는 배움의 방법이다.

安樂休游是引伸勸學篇說者兌也的意義,

,,,유는 권학편열자태야열이라는 것은 기쁨이다.’의 의의를 인용하여 펼친 것이다.

肅嚴則是尊師篇聽從必盡力的補充.

숙엄은 존사편의 청종필진력듣고 따라하여 반드시 힘을 다한다.’의 뜻을 보충한 것이다.

子華子見貴生篇.

자화자가 귀생편을 보았다.

孟子說. 不仁者可與言哉? 安其危而利其菑, 樂其所以亡者.

맹자가 말하길 불인자는 가히 함께 말할 수 있겠는가? 위급할때에 편안히 하고, 재앙을 이용하여 하고, 망한바의 것을 즐거워한다.

亡者亦樂其所以亡句同.

더불어 망자는 역시 그 망하는 바를 즐긴다.를 함께 썼다.

脯是肉乾, 嗜其脯是孔子所謂樂之者

포는 말린 고기이고, 그 포를 좋아하는 것을 공자께서 락지자에서 일렀다.

 

[今譯]

達師的敎法, 要使其弟子安心求學, 情緖愉快, 作息有時

달사의 가르치는 방법은 그 제자로 하여금 마음을 편히 하여 학문을 구하고, 정서를 유쾌하게 하고, 때때로 휴식을 취하고,

優游自在, 態度端莊而作事認眞.

자유자재히 놀고, 태도를 단정하게 하고 일을 함에 참을 알게 함에 있다.

得於這六項情況中求學, 則邪惡的念頭斷塞了,

이 육항의 정황중에서 학문을 구하면 즉 사악한 생각이 끊기고 막히게 된다.

 

理義的道術勝行了, 不得於這六項情況中求學

이와 의의 도술이 뛰어나게 행하고, 이 여섯항의 정황에서 배움을 구하지 못한즉

則國君不能行令於其臣, 父親不能行令於其子

나라의 임금은 그 신하에게 명령을 능히 행하지 못하고, 부친은 그 자식에게 능히 명령을 행하지 못하고,

老師不能行令於其弟子. 人情是不能樂於其所不安

스승은 그제자에게 능히 명령을 행하지 못한다. 사람의 정은 그 불안한 곳에서 능히 즐기지 못하고,

不能有愛於其所不樂. 做了而可以得到快樂的事,

그 불안한 바에서 능히 사랑이 있지 않다. 다 마치고서 가히 쾌락의 일에 도달한다.

何必等待賢者, 則使不肖者亦不待權告就去做了

하필 여러 현자를 대하리오, 즉 불초자로 하여금 또한 권고하여 나아가 마침을 기다린다.

做了而得到苦難的事, 不必說不肖者不肯做

마쳐서 고난의 일에 도달할수 있으면 불초자가 수긍하지 않음은 말할 필요가 없다.

卽使賢者亦不能長久做下去, 因此, 求之於人情

즉 현자로 하여금 또한 능히 오래도록 밑으로 나아가게 함이 없게 하여야 한다.

이것으로 인하여, 인정에서 구하여

就可得知所以勸學之道了. 子華之說

권학의 도의 마침을 나아가서 가히 앎의 바를 얻는다. 자화의 말에서

王者樂其所以王, 亡者亦樂其所以亡

왕이 된자는 왕노릇 하는 것을 즐기고, 망한자는 역시 그 망한바를 즐긴다.

所以烹食獸肉不足以盡知獸肉的美味

수육을 삶아서 먹어도 수육의 좋은 맛의 앎을 다함으로써 만족하지 못하는 바

一定要長久嗜食肉乾的人幾乎知道了

일정하게 요구한다. 오래도록 말린 고기를 즐겨 먹는 사람은 도를 앎에 가깝고,

那嚒王者有嗜愛於理義, 亡者亦有嗜愛於暴慢

어쩌면 왕이 된자가 이와 의를 즐겨 사랑함이 있으니, 망한자 역시 포만을 즐겨 사랑함이 있으니

所嗜愛的不同, 所以其禍福亦不同

즐겨 사랑하는 바가 같지 않고, 그 화복의 바 역시 같자 않다.

 

 

不能敎者, 志氣不和, 取捨數變, 固無恒心

가르치는 것이 불가능한 자는, 뜻과 기가 화하지 않고, 취하고 버리는 횟수가 자주 변하며, 본디 항심이 없어서,

若晏陰喜怒無處, 言談日易, 以恣自行, 失之在己

마치 날씨가 맑고 흐리는 것이나 기쁘고 성내는 것처럼 정한 것이 없다. 말하고 이야기하는 것이 날마다 바뀌고, 함부로 스스로 행동하고, 잘못이 자기에게 있는데도,

不肯自非, 愎過自用, 不可證移

스스로 잘못을 수긍하지 않고, 괴팍하고 허물있는 것을 스스로 행하고, 부끄러움을 깨닫지 못한다.

自權親勢及有富厚者, 不論其材, 不察其行

권세와 친함있는 자에서부터 부유한 자에 이르기까지 그 자질을 논하지 않고, 그 행동을 살피지 않으며,

敺而敎之, 阿而諂之, 若恐弗及

빨리 달려가 그를 가르치고, 아첨하고 두둔하는 것이, 도달하지 못함을 두려워함과 같다.

弟子居處修潔, 身將出倫, 聞識疏達, 就學敏疾, 本業幾終者

제자가 수양하여 결백함에 처해있고, 신체 용모가 무리중 뛰어나고

들은 바와 아는 바가 통달하고, 학문에 나아감이 민첩하고, 근본이 되는 학업이 끝나는 자가 있으면

則從而抑之, 難而懸之, 妬而惡之

즉 쫒아가서 그것을 억누르고, 힐난하고 그것을 매달아 놓은채 그를 미워한다.

弟子去則冀終, 居則不安, 歸則愧於父母兄弟

제자가 마쳐서 떠나길 바라고 즉 불안에 있으면 돌아가서 부모형제에게 부끄럽고,

出則慙於知友邑里. 此學者之所悲也.

나가서 읍리의 친구가 아는 것이 부끄럽다. 이것이 배우는 사람이 근심하는 바이다.

此師徒相與異心也. 人之情惡異於己者

이것이 스승과 제자가 다른 마음과 함께 있는 것이다. 인간의 정은 자기와 다름을 미워한다.

此師徒相與造怨尤也. 不能譽其所惡, 學業之敗也

이것은 스승과 제자가 함께 서로 더욱 원망을 만드는 것이다.

그 미워하는 바를 능히 즐기지 못한다. 학업이 망가지는것과

道術之廢也, 從此生矣

도술이 폐하는 것은 이로서 생겨나는 것이다.

 

[今註]

此段是說明不能敎者之不合理的態及行爲

이 문단은 능히 가르치지 못하는 자의 불합리한 태도와 행위를 설명한 것이다.

晏陰, 許釋引陶鴻慶札記

날씨가 맑고 어두움은, 허씨가 인용하여 풀이 했고, 도홍경이 편지로 기록하였다.

說文, 晏天淸也, 晏陰猶言晴陰, 高注非是

설문해자에서 안은 하늘이 맑다. 안음은 청음이란 말과 같다. 고씨의 주도 바르지 않다.

此言不能敎者無恒心, 故喜怒無常

이것은 능히 가르치지 못하는 자가 항심이 없음을 말했다. 고로 희노는 항상 같은 법이 없다.

猶如天時晴陰不定. 尹校據范耕硏校補於本句上加一心字非是

윤교거와 범경연이 이구절위에 일심이라는 글자를 교정하고 보충하였으나 바르지 않다.

不可證移猶今言不可理喩.

가히 증명하여 옮길 수 없음은 지금 말한 가히 이치를 깨들을 수 없다는 말과 같다.

許釋引兪樾平議謂證字當作證,

허씨가 유월평이 논의한 말을 인용하여 말하기를 증이라는 글자는 당연히 증으로 해야한다.

尹校據改, 似無必要. 權親勢是權位

윤교거가 고쳤으나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권친세는 권자는 권위이고

親屬 (如皇親國戚)及勢力三種不同的關係

친자는 친속이고 (황족의 친족과 같다.) 세는 힘이고 삼종이 그 관계과 같지 않다.

許釋引陳昌齊說謂親字是衍文.

허씨가 진창제의 말을 인용하여 이르기를 친이란 글자는 연문이다.

又引王引之說謂權親勢當作親權勢, 尹校據改, 均非是

또한 왕인의 말을 인용하여 이르기를 권친세는 당연히 친권세로 만들어야 한다. 윤교거가 고쳤으나 다 바르지 않다.

敺與趨同聲借用, 趨而敎之, 阿而諂之, 正是趨炎附勢的意思.

구와 추는 동성이어서 차용하였다. 쫒아가서 그사람을 가르치거 그에게 아첨함은 달려가서 권세에 불처럼 붙는 다는 뜻으로 생각하는 것이 맞다.

冀終, 高注 弟子欲去則冀終其業, 且由豫也

기종은 고씨주에서 제자가 가고자 하는 즉 그 학업을 마치길 바라고 또한 유에함이다.

 

[今譯]

不能敎的老師, 其志趣氣度大都躁急而不和平,

느히 가르치지 못하는 노사는 그 뜻과 기도가 대체로 조급하고 화평하지 않다.

患得患失, 數次變易, 實在沒有恒心,

얻음과 잃음을 근심하고 수차례 변하여 실제 항심이 있지 않다.

此喜怒無常, 猶如天時的晴陰不定, 說話不算數,

이로 인하여 희노가 항상 같지 않고, 하늘의 때가 개고 흐림이 정해지지 않음과 같다.

설화를 셀수가 없으니,

 

天天變更, 任意而行, 有時明明是他自己錯誤.

하늘이 변경됨은 임의로 행함이다. 때론 명명하다하나 이것은 자기의 착오이다.

不肯認錯, 剛愎自用, 不可理喩.

착오를 수긍하지 않으면, 굳세고 괴팍한 것을 스스로 사용하면, 가히 이치를 깨달을 수 없다.

看見有權勢顯要反富厚人家的子弟,

권세를 드러내고 부유하고 후덕한 집안의 자제를 살펴보면,

不論其材質是否可造, 不察其行爲是否妥當

그 재질의 옳고 그름을 가히 나아감을 논하지 않고, 그 행위가 옳고 그른지의 타당함을 살피지 않고,

乃不惜自卑, 趨往敎之, 備極阿諛

스스로 비천함을 애석해 하지 않으며, 달려가서 이를 가르치고, 아첨을 다 갖추고,

還恐怕有不周到之處, 對於弟子中有君處整潔

돌아와서는 두루 이르지 못할 곳인가를 두려워한다. 제자를 대함에 그 중간에 거처가 정결하고,

狀貌俊秀, 見解通達, 學力敏捷

그 모양이 준수하고, 보고 이해하는 것이 통달하고, 학력이 민첩하고,

卽將結業者, 反而妬忌厭惡, 予以抑制

나아가서 장차 학업을 마치는 자가 다시 투기하고 악을 싫어하여 내가 억제하여서

故意爲難, 使其學業縣而不結

고의로 어렵게 한다. 그 학업을 걸어 놓고는 마치지 않는다.

於是弟子有的憤而要去, 又希望留下又覺得不能安心,

이에 제자가 분이 나서 갈 것을 요구하니, 또한 능히 안심하지 않음을 깨닫고 머물러 졸업하기를 희망한다.

回家則有愧於父母兄弟, 出門則有慙於友好鄕里

집에 돌아가면 곧 부모형제에게 부끄럽고, 문을 나가면 즉 친구와 향리에 부끄럽다.

這眞是學者所悲痛的事.

이 참으로 학자가 비통한 일의 바이다.

這樣的師生相與異心, 人情大都是討厭異於己者

이런 모양의 사제는 서로 마음이 다르니, 인정은 대부분 자기와 다른 것은 누르고 싫어하니

這就造成了師生的互相怨恨

스승과 제자의 서로 원한에 나아가서 이루어지니

人情是不能親愛其所怨的人, 不能稱譽其所恨的人,

인정은 그 원망하는 바의 사람을 능히 친애할 수 없고, 그 원하는 바의 사람을 능히 일컬어 기릴 수가 없다.

學業的敗壞, 道術的廢棄, 都從此發生了

학업이 무너지고 잘못됨과, 도술의 폐하고 버리는 것은 모두 이로부터 발생된다.

 

 

 

喜敎者卽不然, 視徒如己. 反己以敎

가르침을 기뻐하는 자는 즉 그렇지 않아서 제자를 보는 것을 자기처럼 한다. 자기 자신을 돌아봄으써 가르치면

則得敎之情也, 所加於人, 必可行於己,

즉 가르침의 정을 얻을 수 있다. 타인에게 더한바는 반드시 자기에게 행함이 가능하다.

若此則師徒同體. 人之情愛同於己者,

이렇게 하면 스승과 제자가 일체가 된다. 사람의 정리는 자기와 같은 사람을 사랑하고,

譽同於己者, 助同於己者, 學業之章明也,

자기와 같은 사람을 기리고, 자기와 같은 사람을 도와주고, 학업이 드러나 빛나는 일과

道術之大行也, 從此生矣.

도가 크게 행해지는 것은 이것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今註]

此段是說善敎的做法, 與上段不能敎者正相反

이 문단은 잘 가르치는 방법을 설했으니, 윗 문단의 불능교자와 더불어 정 상반된다.

孔子說, 己所不欲, 勿施於人

공자가 말하길,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바를 남에게 베풀지 마라.

中庸 施諸己而不願, 亦勿施於人

중용 이것을 자기에게 베풀어 원치 않는다. 또한 남에게 베풀지 말라

是本文 反己以敎的所本.

이 본문의 자기에게 되돌려서 가르쳐야 한다.글의 본이 되는 바다.

 

[今譯]

善敎的則不然, 視弟子如同自己,

잘 가르치는 즉 그렇지 않고, 제자를 보는 것을 자기 같이 하고,

用自己所要學的敎授他人,

자기가 요구하는 바의 학문을 써서 타인에게 가르침을 주고

這就得到敎人的情理了.

이에 남을 가르치는 정리에 이를 수 있다.

 

 

大凡所施敎於他人的, 必定可以行之於自身, 這樣的敎,

대체로 타인에게 가르침을 베푸는 바, 반드시 일정하게 가히 자신에게 행해야 한다.

이러한 형태의 가르침이

那麽師生如同一體, 人情大都愛其所同,

어쩌면 스승과 제자가 일체가 됨과 같다. 인정은 대부분 그 같은 바를 사랑하고,

譽其所同, 助其所同, 學業的彰明,

그 같은 바를 기리고, 그 같은 바를 돕고, 학업의 밝음과

道術的大行, 都從此發生了.

도술의 큰 행실이 모두 이를 따라 발생한다.

 

 

 

不能學子, 從師若而欲學之功也.

배우지 못하는 자는 스승을 좇아 학문의 공부를 해우고자 한다.

從師淺而欲學之深也,

스승을 좇아 얕음이나 학문의 깊이를 있게 하고자 한다.

草木鷄拘牛馬不同譙訽, 譙訽遇之,

초목과 닭,,,말이라도 아무렇게나 대하면 안되나 그것들을 아무렇게나 대하면

則亦譙訽報人. 又況乎達師與道術之言乎

역시 사람에게 아무렇게나 보답한다. 하물며 통달한 스승과 그의 도에 관한 말씀에 있어서랴.

故不能學者遇師則不中, 用心則不專,

고로 배우지 못하는 자는 스승을 대우하더라도 마음에 들지 않고,

마음 씀이 오로지 하지 않고,

好之則不深, 就業則不疾, 辯論則不審, 敎人則不精.

배움을 좋아하더라도 깊이 못하고, 학업에 나아가더라도 노력하지 않고, 말로 논하더라도 살핌이 없고, 사람을 가르치더라도 정성이 없다.

於師慍, 懷於俗, 羈神於世.

스승에게 원망하고, 속세에 안주하며, 속세에 묶인바가 된다.

矜勢好尤, 故湛於巧智, 昏於小利, 或於嗜欲.

권세를 자랑하고 괴이한 것을 좋아하며, 교묘한 꾀를 마구 쓰고, 작은 이익에 눈이 어두워, 즐기는 일과 욕심이 혹한다.

問事則前後相悖, 以章則有異心, 以簡則有相反.

일을 물으면 앞뒤가 서로 맞지 않으니, 밝게 함으로써 마음과 다름이 있으니, 간략으로써 서로 반대가 있다.

離則不能合, 合則不能離, 事至則不能受, 此不能學者之患也

나누어진 것을 능히 합하지 못하고, 합한 것을 능히 나누지 못하며, 일이 이르면 능히 받아들이지 못하니, 이것은 학문하는 자가 능하지 못함을 근심하는 것이다.

 

[今註]

此段是說不能學者的求學情形

이 문단은 능히 배우지 못하는 자의 학문을 구하는 마음과 형태를 설명했다.

以從師求學爲苦事而希望學業成功

스승을 따라서 학문을 구함이 고단한 일이 되나 학업은 성공하기를 희망하고,

從師甚淺而希望學問精深. 譙是譙呵

스승을 따름은 심히 얕으나 학문이 깨끗하고 깊어지기를 희망한다. 초는 꾸짖고 가책하는 일이다.

詬是詬病, 譙詬是責罵輕侮之意

후는 꾸짖고 아프게 함이다. 초후는 꾸짖고 매도하고 가볍게 여기고 모욕하는 뜻이다.

尹校據譚戒甫校呂遺誼, 草木若夫,

윤교거가 여유의에게 크게 고침을 경계하여 말하기를, 초목을 약부로 고쳤다.

惟許釋引王紹蘭說謂猶莊子所謂, 昔予爲禾耕而鹵莽之, 則其實亦鹵莽而報予. 芸而滅裂之其實亦滅裂而報予(則陽篇) 又晏子所謂, 牛馬不可窮, 窮不可服(內篇雜下)

허씨가 오직 왕소란을 인용하여 풀이하여 말하기를, 장자에 이른바와 같다. 밭갈기를 거칠게 하니 즉 그 열매가 또한 거칠게 나에게 보답하였다. 김매기 또한 버려두니 기실또한 형편없이 나에게 돌아왔다.(측양평) 또 안자가 말하는 바 우마를 길들이지 않으면 길들여도 복종하지 않는다.(내편잡하)

依此, 則原文亦可通, 不過以此取喩不甚妥適而已.

이에 기대보면, 즉 원문또한 가히 통한다. 심히 마땅히 나아가지 않아야 비유하여 취하는 것을 지나치지 않을 뿐이다.

不中就是不中意, 是不能學者對其師的不滿意, 故不文曰於師慍

불중은 뜻에 맞지않는 뜻이니 이는 능히 배우지 못한자가 그 스승을 대함이 불만의 뜻이다.

고로 아래 문장에 말하길스승에게 성낸다

高註許釋皆未妥畢校,

고씨의 주와 허씨의 풀이가 모두 마땅하지 않다. 다 교정해보니

謂其精神縈擾於世務而不能脫然也

정신이 세상의 일에 엉키고 흔들려 능히 벗어날 수가 없다.

高註心猶義也, 許釋引文心雕龍章句篇謂

고씨주는 심은 이와 같다.허씨는 문심조룡 장구편에 인용하여 이르기를

積句而成章, 章總一義, 與注相會.

구를 쌓아서 문장을 이루고, 장의 모든 한가지 뜻은 주와 함께 서로 맞다.

許釋甚是, 這是說不能學者爲學不專,

허씨가 심히 맞게 풀이했다. 이는 설하기를 능히 배우지 못한자는 학문을 함에 있어서 오로지 하지 못하고,

縈心世務, 問事則前後相悖

세무에 마음이 얽매여, 일을 물어봐도 전후가 서로 어그러지고

寫成一篇文章則內容雜亂而各有異義,

한편의 문장을 써서 이룬 적 내용이 잡란하고 각각 다른 뜻이 있다.

簡單的幾句亦有彼此相反.

간단한 몇구절도 또한 저쪽과 이쪽이 서로 반대된다.

 

[今譯]

不能學者以從師求學爲苦事而希望其學業有所成功,

능히 배우지 않는 자는 스승을 쫒아서 학문을 구하는 괴로운 일로 여긴다. 그러나 그 학업에 성공하는 바가 있기를 희망한다.

從師求學的時間淺近而希望其學問精深,

스승을 쫒아서 학문을 구하는 시간은 얕고 가까우나 그 학문을 정심하기를 희망한다.

這猶如對於草木鷄犬牛馬亦不可任意責罵輕侮,

이것은 초,,,,,말을 대함에 있어 임으로 책도하고 경모하여서는 안된다는 것과 오히려 같다.

如果以責罵輕侮的態度相待,

과연 책도하고 경모하는 태도로 서로 대하는 것과 같으면,

佗們亦將以責罵輕侮的態度相報,

저들은 역시 장차 책도하고 경모하는 태도로써 서로 갚으니

又何况達師之敎與道術之言呢?

또한 어찌 하물며 달사의 교와 도술의 인에 있어서랴?

所以不能學者對待老師則不中意,

능히 배우지 않는자가 노사를 기다려 대한 바인 즉 뜻에 맞지 않고,

爲學用心則不專一, 對學問的愛好則不深切,

배우고 마음을 쓰는 적 전일 하지 않고, 학문을 대하는 애호가 깊고 간절하지 않다.

經常聽從則不盡力, 辯論理義則不審是非,

떳떳한 법을 따라서 듣는 즉 힘을 다하지 않고 논을 변하고 뜻을 다스리는 즉 시비를 살피지 않는다.

仿效他人則不能精核. 於是遷怒於其師,

타인을 본받는 것은 즉 능히 정수하고 핵심이 되지 않는다. 이에 그 스승에게 성을 옮긴다.

而自安於習俗, 縈心於世務

습관이 된 습속에 편안하고, 세무에 마음이 엇갈리고,

矜誇權勢, 播弄是非, 因而溺於巧詐

권세를 자랑하고, 시비를 희롱하고, 교묘하고 거짓됨에 빠지고

昏於小利, 惑於嗜慾

작은 이익에 어둡고, 욕심을 즐기는데 미혹되고

問事則前後相違悖,

사리를 묻는 즉 전후가 서로 어긋나고 거스린다.

作爲文章則內容雜亂而各有異義,

문장을 짓는 즉 내용이 잡다하고 혼란스럽고 각기 다른 뜻이 있다.

卽使簡短亦有彼此相反之處,

곧 간단한 것으로 하여금 또한 피차에 상반된 곳이 있다.

分離的不能連合, 連合的不能分離

분리한 적 능히 연합할 수 없고, 연합하면 능히 분리할 수 없다.

一旦事至則不能接受辦成, 這些都是不能學者的毛病

이 작은 모든 것이 능히 배우지 못한자의 오래된 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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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 공부를 하며.  (0) 2018.09.03